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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의 문화
관람시간09:00-18:00 휴관일:매주 월요일, 1월1일, 설 추석당일 단체관람안내 및 예약문의 053.810.6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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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현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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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성구청
  원효대사 사진 01원효대사
통일신라시대 스님인 원효(617년(진평왕39)∼686년(신문왕6))의 성은
설씨(薛氏)였으며, 경산의 압량군(押梁郡) 출신이다.
15세경에 출가하여 수도에 정진하였다.
원효는 당시 풍조에 따라 의상과 함께 당나라로 가다가 한 토굴에서 해골에 괸
물을 마시고 “진리는 결코 밖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서 찾아야
한다”는 깨달음을 터득하고 의상과 헤어져 돌아온 일화는 유명하다.
한국불교사에 길이 남을 학자이자 사상가였으며, 당시 왕실 중심의 귀족화된
불교를 민중불교로 바꾸는 데 크게 공헌하였다.
불교 경전을 섭렵하여 종파에 치우치지 않고 불교를 하나의 진리로 조화를
이루고자 한 사상을 펼쳤다. 화쟁사상(和諍思想), 일심사상(一心思想),
무애사상(無寐思想)이 그것이다.
요석공주와의 사이에서 설총을 낳았다.
 
  설총사진 02 설총
설총(655년(태종무열왕2)∼?)은 신라 중대의 대학자로 자는 총지(聰智)이며,
원효대사와 요석공주 사이에 태어나 귀족계급인 6두품에 속하였다.
≪증보문헌비고≫에는 경주설씨(慶州薛氏)의 시조로 기록되어 있다.
한자로만 표현할 수 없는 우리말을 한자에 우리말의 토씨를 넣은 표기법인 향찰을
집대성하여, 학문발전에 공이 컸다. 글을 잘 하고 유학에 능통하여 신라10현,
신라3문장가, 동방18현 중의 한 사람으로 꼽히나, 남아있는 글이 별로 없어 임금을
풍자한 「화왕계(花王戒)」와 불상에 새겨진「감산사석조아미타여래·미륵보살조상기」
정도만 전해진다.
경산에서는 1923년 남산면 하대리에 도동재(道東齋)를 세워 그를 기리고 있다.
 
  일연사진 03 일연
지금의 경산인 장산군(章山郡:지금의 경산) 출신인
일연(1206년(희종2)∼1289년(충렬왕15))은 원나라 간섭기 고려 불교계를
주도한 스님이다. 충렬왕의 신임을 얻어 1283년 처음으로 스님으로서 최고 지위인
국존(國尊)에 올랐다. 일연은 승려였지만 효성이 지극하여 항상 어머니가 계시는
경산과 가까운 비슬산, 운문산 등지의 사찰에 주로 머물렀다. 개경에서 국존에 올라
광명사에 머물렀을 때조차 늙은 어머니의 봉양이 마음에 걸려 왕의 만류를 뿌리치고
고향으로 돌아올 정도였다.
『삼국유사(三國遺事)』와 『중편조동오위(重編曹洞五位)』등의 저술을 남겼으며,
만년에 머물렀던 군위 인각사에 탑비(塔碑)가 있다. 일연이 죽은 뒤,
1317년(충숙왕4)에는 일연의 고향이라 하여 동경(東京)의 속읍이었던 경산현이
현령관이 파견되는 주읍으로 승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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