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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 무학산 - 왕건 구명(救命) 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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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부서 시립박물관 작성일 2008-02-12
담당자 관리자 조회 4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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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읍의 주산으로 알려지고 있는 무학산은 하양인의 성품과도 같이 듬쑥하고 무게가 있어 보인다. 본래의 이 무학산은 팔공산의 혈이 이어진 한 준령으로 하양 지역의 오랜 역사를 지켜 준 환성산맥과 남으로 팔공산의 준령이 뻗어난 초례봉과는 서로간 협시의 역할을 하고 있는 산맥으로, 무학산 준령은 하양 소재지의 서부지역과 안심지역을 포근히 안고 있는 형상이 된다. 초례봉(醮禮峰)에서 금호강을 내려다보면 마치 금호강의 모습이 로렐라이 언덕에서 라인강을 바라보는 듯 하다는 것이다. 초례봉의 ‘초례(醮禮)’란 어원은 남녀의 혼례의식을 말함인데 학자들 간에는 이 산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일설에는 고려 건국 왕인 태조 왕건이 이 산하에서 후백제와 격전을 하면서 하늘의 별들에게 제사를 올렸다는 구전과, 다른 한 설은 태조 왕건이 직접 초례청으로 사용하였던 곳이란 구전도 있다. 1) 어쨌든 초례산은 고려 태조 왕건과는 뗄 수 없는 큰 인연이 있는 듯하다. 초례산 등 넘어 우뚝 솟은 팔공산, 이 팔공산의 지명이 곧 태조 왕건과 그의 충신 8인과의 인연으로 붙여진 것이란 설화가 있고 보면 하양지역의 초례산은 어쩌면 태조 왕건의 역사적인 의식이 처음 이루어졌던 곳일 수도 있다. 여기서 고려 건국 초기의 한 설화를 소개하면 이곳의 지명이 태조 왕건과의 관계가 전혀 무관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고려 태조가 팔공산 일대에 진을 치고 있을 때 후백제를 일으킨 견훤이 고려를 치기 위하여 하양. 안심 일대를 포위하였다는데 이 사실을 알지 못한 고려 태조 왕건이 급히 진군을 서둘렀으나 이미 초례산 일대가 견훤의 군대에 의해 완전 포위되어 손 쓸 틈도 없이 항복할 수밖에 없는 위기에 처했다고 한다. 이때 당시 고려의 대장군이었던 신숭겸 외 7인의 장수가 황급히 태조 왕건에게 전장은 자신들에게 맡기고 몸을 피하라 하여, 태조 왕건은 신숭겸 장군과 옷을 바꿔 입고 서둘러 적진의 뒤를 돌아 위기를 모면했다는데, 지금의 대구광역시 동구 안심동의 지명이 태조 왕건과 관련된 지명이다. 즉, 적진을 피해 넓은 들을 찾은 후, 호위한 신하와 같이 안도의 숨을 몰아쉬면서『이젠 안심이구나』하였던 곳이 지금의 안심동이란 구전이 있고 보면 하양지역은 고려 태조 왕건이 통일된 고려를 건립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던 것만은 틀림없는 듯 하다. 초례산, 환성산, 무학산은 금호강과 더불어 하양, 즉, 물이 빛나는 지역으로 이 곳의 지명을 붙이는 데는 부족함이 없었을 것이다. 초례산, 환성산, 팔공산을 오가며 고려를 창업하기 위하여 목숨을 버렸던 8공신, 그가 곧 신숭겸 장군 외 7명의 공신들이다. 후일에 고려 태조 왕건이 친히 팔공산을 찾아 당시 장렬히 전사한 고려 개국 공신 8명의 넋을 추모하기 위하여 신라의 삼산 오악중의 한 산이었던 中岳山을 공산이라 하였다가, 다시 8人의 공신을 위해 팔공산이라 고쳐 부르게 하였다는데, 이 산의 지명을 보아도 고려 태조 왕건의 부하 사랑에 대한 애절함을 엿볼 수 있다. 왕건과 견훤의 전투에서 대구 八公山 일대에 남아있는 유적(지명)은 다음과 같다. <八公山 일대> [八公山]-왕건이 견훤에게 포위당했을때 8명의 공신 때문에 살아남은 산 [표충단]-8명 공신중 신숭겸이 왕건 행세하다가 전사당한 것을 기린제단 [지묘동]-지혜롭게 묘한 계책으로 왕건을 살린 동네 [독좌암]-왕건이 패하고 쫓겨 혼자 앉았다는 바위 [살내(전탄)]-왕건과 견훤이 강을 끼고 싸워 화살이 강을 가득 채운 곳 [파군재]-왕건이 패했던 고개 [무태]-왕건이 지나갈 때 사람들이 게으름이 없고 부지런하여 부른 곳 [연경]-왕건이 지나갈 때 사람들이 글 읽는 소리가 낭랑하여 붙은 이름 [왕산]-왕건이 머물렀던 산(표충단 뒷산) [반야월]-왕건이 패하여 도망갈 때 반달이 비추어 무사히 도착한 마을 [안심]-왕건이 패하여 도망가다가 마음을 푹 놓은 곳 [해안]-왕건이 패하여 도망가다가 겁에 질린 얼굴에서 근심을 푼곳 <대구앞산> [은적사]-왕건이 숨어서 발자취를 숨겼던 곳 [장군수]-왕건이 피신하여 쉬어 지낼 때 마신 물 [왕굴]-3개월이나 왕건이 머물려 지냈던 굴 [안일사]-왕건이 편안하게 쉬면서 전쟁에서 패한 마음을 누그러뜨린 곳 [임휴사]-왕건이 마지막으로 임시로 휴식했던 곳 1)정호완, “경산의 지명 유래,” 1998, 태학사.

<자료제공 김종국(구비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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