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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연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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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총과 독자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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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부서 시립박물관 작성일 2008-02-12
담당자 관리자 조회 3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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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산과 연결한 현성산이 남천면 협석리까지 뻗어 있는데, 이 현성산의 주봉이 지금의 경산시 유곡(지름골)동 앞산이다. 마을 앞 100여m 전방에는 유천지(버드내지)라 불리는 조그마한 저수지가 있으며 이 버드내지 라는 유천이 후일 미화되어 여천이라 칭하게 되었다는 구전도 있다. 『弘儒候 薛先生實記』에 의하면, 설총의 字는 聰智요, ""生於油谷 長於 油川""이라 기록하고, ""一云, 彊宇 道水庵""이라 기록하고 있다. 이 지방 촌로들의 구전에 의하면, 옛 도수암지는 지금의 유곡 뒷산 불등고개 아래라 믿고 있으며, 불등고개라 전래되는 곳은 이 산의 중턱으로 지금은 밭으로 변하였고, 주변의 곳곳에는 부서진 기와 조각, 사재로 보이는 석조물의 파편 등이 질서 없이 흩어져 있고, 신라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삼층석탑 1기가 완형으로 남아 있었다는데 지금은 흔적조차 없다. 옛 도수암이 있었다는 지명과 여천은 약600m 거리에 있고 모두 불등고개 아래에 있다. 남산 도동재에 출입하는 유생들과 이 지방 촌로들은 설총이 유곡에서 출생하였고, 원효는 이곳의 북쪽 율곡에서 출생하였다고 주장하며, 유곡의 불등고개는 설총이 독서하는 곳으로 이 고개의 고목 아래는 개미가 없다고 하며 원효의 외아들이 공부 하였다하여 독자골이라고도 한다. 1980년경만 하더라도 이곳은 이 지방 나무꾼들의 유일한 점심 터로 고목 아래 개미가 없는 이유는 당시 설총이 부의 고향에서 학문을 정진하면서 흘린 땀이 이 일대에 흘러내려 지표에 소금 성분이 많아 개미가 범접 못했다는 설도 있다. 1923년 자인 지방 유림들이 설총 선생의 유업을 기리기 위해 지금의 남산면 하대리 마을 서편 안골 길목에 도동재란 이름의 제단을 건립하였는데, 그 때 있었던 다음과 같은 전설이 지금까지 전래되고 있다. 즉 당시, 압량면 여천, 유곡에는 이 마을을 개척한 여천의 밀양 박씨와 유곡의 단양 우씨가 집성을 이루고 살았다는데, 이 두 마을은 한때 유학의 원류인 설총 선생의 출생지라 하여 전국 각처에서 많은 유림들이 날이 끊이지 않게 이곳을 찾아들었다고 한다. 행세를 하던 이 마을 사람들은 당시까지만 해도 확실한 설총의 출생고를 밝힐 수 없어 예부터 내려오는 전설만 믿고 마을 뒤 능선에 설총 신도비를 세워두었다는데 날이 갈수록 전국의 유림들이 찾아드는 횟수가 잦아들자, 마을 주민들은 연비연사간의 손님 접대에만도 정신이 없었다고 한다. 날마다 찾아드는 객이 얼마나 많았는지 유곡의 단양 우씨가 모여 사는 마을은 손님이 많아 `우글우글`하였고, 그 아래 마을인 여천의 밀양 박씨 집성촌에는 사람이 `박실박실` 하였다고 한다. 이 시점에 단양 우씨들은 처음에는 자기네 씨족이 양반이라 하여 기세를 부렸으나 끝내 늘어나는 방문객에 시달려 초죽음이 된 나머지 동민들이 모두 모여 마을 주민들이 공동으로 건립하였던 `설총 신도비`를 버드나무 떡메로 힘껏 쳐 넘어뜨렸다고 하는데, 그 때 맞은 충격인지 비대석 중심부에는 약 30cm 가량 금이 나있다. 남산면 하대리에 남아있는 `도동재`의 설총 신도비는 현재도 그 전설을 입증이라도 하듯 비대석의 하단부가 훼손된 채 복원 되어있다.

<자료제공 김종국(구비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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