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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연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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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제 인물
중주제 효자
소주제
표제어 안영모
시대 조선
참고문헌 조선환여승람 경산편(경산문화원), 1999
필자 정호완
비고
내용 생몰 연대 미상. 조선조 경산의 효자. 순흥인으로 자는 경문(敬文), 호는 여석(如石)이며 회헌 안향(安珦)의 후손이다. 어려서 효성스러웠으나 일찍이 어머니가 돌아가심을 슬프게 여겼다. 늙으신 아버지를 성심으로 봉양하였다. 집안이 어려워 배우지 못함을 한스럽게 여겼다. 아우 국모(國模)에게는 스승에게 나아가 배우기를 적극 권하였다. 아우에게는 집안 일을 맡기지 않았다. 아우에게 말하기를, “나는 일을 당연하게 하지만, 너는 다행하게도 집안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 조상님들은 평소 부지런하여 집안을 일으켰다. 우리의 선조가 학문을 처음으로 개척한 일을 기리기 위하여 2백금을 문묘에 헌납하여 제향을 모심에 필요한 비용으로 쓰도록 한다. 다시 돈을 더 내어 선비를 기르는 데 도움을 주어야 한다. 5천금을 내어 학교를 세우고 250금을 관청에 내어 무지한 사람들을 깨우치는데 쓰도록 하며, 쌀 수 백석을 내어 가난한 사람들 구제를 위하여 쓰게 한다. 이 모두가 효행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아버지가 돌아가매 공이 울며 삼년을 하루 같이 성묘를 하였다. 아우와 같이 늙도록 우애 있게 보냈으니 마을 사람들이 그 아름다운 가풍에 대하여 칭송을 하였다. 고종 무렵 음직으로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가 되었다가 중추원의관(中樞院議官)으로 승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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