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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연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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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제 역사적 사건
중주제 문헌기록
소주제 사건
표제어 와촌 박사리 공비 양민학살사건
시대 1949년
참고문헌 내 고장 전통(경산군), 1982, 내 고장의 대공투쟁사(한국반공연맹 경상북도지부), 1987
필자 김약수
비고
내용 1949년 11월 29일 공비들에 의해 박사리 주민 38명이 죽고 28명이 중상을 입고 가옥 108동이 전소되고 재물을 약탈당한 사건. 사건경위는 다음과 같다. 1949년 10월 15일 팔공산 양시골에 나무하러 간 박사동민 도달권이 공비에게 붙잡혀 “어디에 사는 누구냐?”고 묻자, 도달권이 “저는 박사동에 산다.”고 했고, “ 내려가서 신고는 절대 하지 않겠다.”고 해서 목숨은 구했으며, 그 길로 경찰당국에 신고하였다. 이 신고에 힙 입어 군경합동 토벌작전으로 공비 78명을 사살하고 7명을 생포하는 전과를 올렸다. 그러나 잔존공비 수 십 명이 운문산 공비에게 연락, 합세하여 박사동 도달권이 경찰에 신고했다는 보복으로 1949년 11월 29일 밤에 많은 공비가 박사동을 습격하여 장총, 큰칼, 죽창 따위로 반공청장년 38명을 살해하고 28명에게 중상을 입혔으며, 가옥 108동을 불태우고 재물을 약탈하였다. 이후 1961년 9월 당시 경산의 뜻있는 군민들이 그날의 희생자들을 위령하고 그들의 반공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대동초등학교 뜰에 비석을 세웠다. 1985년 11월 29일 당시 염길정 국회의원과 김희윤 군수에 의해 박사리 687-3번지 가마골에 위령비를 건립하고 매년 11월 30일 한국자유총연맹 경산시지부에서 자유수호희생자 합동위령제를 봉행하고 있다. 위령제 봉행을 10월 30일로 지정한 것은 1968년 10월 30일 경북 울진군 북면 고포리 무장공비 침투사건으로 희생된 영령들의 넋을 위로하고, 그날을 상기시켜 국가안보의식을 고취하고 영원한 자유민주주의 수호에 산교육이 될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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