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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연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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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제 역사적 사건
중주제 문헌기록
소주제 상소
표제어 전우벽의 구사부곡 복현 상소
시대 조선
참고문헌 내 고장 전통(경산군), 1982
필자 김약수
비고
내용 전우벽(田禹闢; 1604-?)은 당시 자인이 고려 현종 때부터 경주부의 속현이었던 바 인조 때 지방민의 누차의 복현 상소로 1673년 자인현으로 복현되었0구사부곡(仇史部曲; 현, 진량읍 현내동 일대)을 떼어서 여전히 경주부에 속하게 남겨두었던 것이다. 이것은 이 지역의 세수와 노역을 고려한 경주부의 간교한 책동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뜻있는 자인 읍민이 관찰사에게 시정을 촉구하였으나, 경주부와 서로 책임을 전가시키므로 해결의 실마리를 잡을 수 없었다. 현종 때 전우벽이 상경하여 옛 구사부곡이 자인에 합속되어야 한다는 마땅함을 상소하여 마침내 구사부곡이 자인현의 하북면으로 편입되었다. 전우벽의 상소장 내용은 ①자인현에 인접하여 있다. ②구사의 면(面) 유생이 자인향교에 적을 두고 있다. ③구사의 미곡(米穀)이 자인현 창고에 수납됨이 수백 년 전부터이다. ④신라 경덕왕 때 자인이 장산에 속하게 될 때 구사도 함께 그러했고, 경주부에 속할 때도 함께 병속되었는 데, 자인현 복설에 구사만 빠졌음이 부당하다. ⑤경상도 전결마감도호부인 성주 창고의 조세를 들이는 문서인 수조안(收租案)에도 구사와 자인을 합친 전결의 숫자가 적혀 있다. ⑥경주부의 구사에 대한 학정(虐政)이 여전하고 민심이 자인에 귀소코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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